서울 아파트

부촌 아파트의 시작, 한강맨션에 연예인과 기업인이 모인 이유

아파트몬 2026. 9. 3. 22:51

 

동부이촌동은 한강 조망과 편리한 교통, 안정된 생활권을 갖춘 서울의 대표 부촌으로 통한다.

그 출발점에는 1971년 준공된 한강맨션이 있다. 대한주택공사가 서민주택을 대량 공급하던 시절, 이 단지는 27평부터 57평까지 중대형 평형을 앞세운 고급 아파트로 등장했다. 배우와 가수, 기업인과 고위층이 모여들면서 한국에서 ‘아파트에 사는 것이 곧 부의 상징’이라는 인식을 만든 초기 사례가 됐다.

 

1968년 동부이촌동 아파트 건설 현장, 모래밭과 제방 주변이 대규모 주거지로 바뀌던 순간, 국가기록원

 

한강의 모래밭 위에 세운 660가구

동부이촌동의 변화는 한강 공유수면 매립에서 시작됐다. 서울기록원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1960년대 후반 한강변을 매립하고, 대한주택공사가 북쪽에 한강맨션을 비롯한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도록 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이 지역을 강남과 여의도보다 먼저 개발된 서울 최초의 ‘아파트 마을’로 설명한다.

 

대한주택공사는 1968년부터 한강맨션을 고급 주거지로 기획했다. 단지 이름에 당시 고급 공동주택을 뜻하던 ‘맨션’을 붙였고, 1971년 23개 동 660가구 규모로 완성했다. 거리 쪽에는 상가를 길게 배치해 장보기와 생활 서비스를 한곳에서 해결하도록 했다. 아파트와 상가, 학교와 교통을 묶은 단지형 주거 모델이 이촌동에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51평 분양가는 공무원 월급 31년치

한강맨션이 처음부터 누구나 살 수 있는 집이었던 것은 아니다.

1969년 분양 당시 27평형은 340만 원, 51평형은 645만 원이었다. 1972년 9급 공무원 초임 월급 1만7,300원을 기준으로 단순 계산하면 한 푼도 쓰지 않아도 각각 약 16년과 31년을 모아야 하는 금액이다.

 

큰 평수의 입주 계층도 뚜렷했다. 경향신문이 1970년 보도한 입주자 조사에서는 51·55평형에 대기업 사장과 고위층이, 32평형에는 중견 회사원과 탤런트·문인·영화배우가, 27평형에는 새롭게 중산층에 진입한 신혼부부가 주로 자리 잡았다. 한 단지 안에 당시 서울의 신흥 중산층과 상류층이 함께 모인 셈이다.

1969년 조선일보에 실린 한강맨션 분양 광고

 

강부자가 1호 계약자가 된 까닭

한강맨션은 대한주택공사가 처음으로 모델하우스를 짓고 선분양한 단지이기도 하다. 실물이 없는 집을 미리 계약하는 방식이 낯설던 때라 첫 분양률은 41%에 그쳤다. 공사 직원들이 직접 기업과 기관을 돌며 판매에 나선 뒤 수개월 만에 물량이 모두 팔렸다.

 

한강맨션의 1호 계약자는 배우 강부자였다. 서울역사박물관 조사와 당시 보도를 종합하면 강부자의 계약은 유명인이 선택한 새 주거 형태라는 상징성을 만들었다. 신성일·엄앵란 부부와 가수 현미 등 당대 유명 연예인도 1970년대 이촌동에 살았다. 한강 조망, 넓은 평면, 현대식 설비를 갖춘 아파트가 문화계 인사와 기업인에게 새로운 성공의 주소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인기는 곧 웃돈으로 이어졌다. 1970년에는 27평형에 50만 원, 37평형에 110만 원, 51·55평형에는 200만 원가량의 프리미엄이 붙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한강맨션은 집을 소유하는 것을 넘어 아파트의 브랜드와 입지가 자산 가치를 만든다는 사실을 일찍 보여줬다.

 

1970년대 동부이촌동 전경이다. 한강변에 아파트가 밀집하며 새로운 중산층 주거지가 형성

 

‘리틀 도쿄’가 된 이촌동의 뒷이야기

 

동부이촌동에는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일본인 주재원과 외교관 가족이 모여들었다. 1980년대에는 일본인 주민과 일본식 상점이 늘면서 ‘리틀 도쿄’라는 별칭도 생겼다. 한강맨션 상가와 이촌시장 주변에는 일본 식재료점과 음식점, 생활 서비스가 자리 잡았고, 이 흔적은 지금도 이촌동의 독특한 동네 분위기로 이어진다.

 

이촌이라는 지명에도 한강의 역사가 담겨 있다. 조선시대부터 한강의 물길과 모래톱 변화에 따라 마을이 옮겨 다닌 데서 ‘옮길 이(移)’를 쓴 이촌이라는 이름이 자리 잡았다. 강변의 지형을 따라 이동하던 마을이 1960년대 매립과 아파트 건설을 거치며 서울의 대표 부촌으로 바뀐 것이다.

 

59층 재건축으로 이어지는 한강맨션의 이름

50년이 넘은 한강맨션은 현재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 정비사업 정보몽땅과 2025년 6월 관련 보도에 따르면 재건축 사업은 GS건설을 시공사로 두고 최고 59층, 1,685가구 규모로 계획됐다. 당시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마치고 주민 이주를 앞둔 단계였으며, 새 단지명으로 ‘이촌 자이 더 리버’가 제시됐다.

 

한강맨션의 가치는 오래된 건물 자체에만 있지 않다. 한강 매립지 위에 대단지 생활권을 만들고, 중산층과 상류층이 아파트를 선택하게 했으며, 유명인의 계약과 분양권 프리미엄이 주거 브랜드를 키운 과정을 한곳에 담고 있다. 오늘날 한강변 재건축 단지가 주목받는 이유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시작에 한강맨션이 있다.

현재 동부이촌동 일대의 모습

 

현재 평형별 가격과 재건축 부담금 이슈

2026년 9월 KB시세로 본 한강맨션의 평형별 가격은 다음과 같다.

공급면적㎡ 전용㎡ KB 일반 매매시세(억 원)
88.93 87.54 44.5
91.14 89.82 44.5
103.27 101.95 48
103.54 102.22 48
121.65 120.33 52
121.88 120.56 52
168.53 167.21 63
180.10 178.78 64.5

(KB부동산 참고)

정비사업 정보몽땅의 추진경과에는 2022년 11월 29일 관리처분인가, 12월 2일 인가고시가 기록돼 있다. 2025년 6월 뉴스핌은 상가 측과의 소송이 일단락돼 주민 이주 절차가 가시화됐다고 보도했다. 최근에는 사업비 외 부담도 관심사다. 머니투데이가 2026년 9월 9일 의원실 공개 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한강맨션의 재건축 초과이익 부담금 예상액은 총 약 4,722억 원, 조합원 1인당 평균 약 6억8,000만 원이다. 이는 개별 가구에 확정 부과된 금액이 아니라 자료상 추산치다. 최고 59층 계획과 함께 관리처분 이후 절차, 공사비와 부담금의 구체화가 한강맨션의 현재를 설명하는 핵심이다.

 

 

출처

- 서울역사박물관, 「동부이촌동: 서울 반세기 종합조사 연구」 및 2025년 발간 보도자료  

  https://museum.seoul.go.kr/archive/NR_index.do?ctgryId=CTGRY1186&type=A

- 서울기록원, 「한강변에 세워진 최초의 아파트 단지」  

  https://archives.seoul.go.kr/contents/house-01

- 매일경제, 「동부이촌동 한강맨션, 첫 중산층 아파트」  

  https://www.mk.co.kr/news/mki/4596476

- 조선비즈 땅집고, 「강부자가 1호 계약자였던 한강맨션」  

  https://v.daum.net/v/20210705110026526

- 경향신문, 「한국 아파트 50년」 한강맨션 관련 기사  

  https://www.khan.co.kr/article/201607050008005

- 서울신문, 「대한민국 아파트 부촌의 원조 한강맨션」  

  https://www.seoul.co.kr/news/seoulPrintNew.php?id=20140310017005

- 서울시 정비사업 정보몽땅, 한강맨션아파트 주택재건축정비사업  

  https://cleanup.seoul.go.kr/cafe/mainIndx.do?cafeUrl=x16mPjJ3

- 뉴스핌, 「한강맨션 59층 재건축 확정」, 2025년 6월 9일  

  https://www.newspim.com/news/view/20250609000750

- 서울특별시 한강사업본부, 한강 및 이촌한강공원 자료  

  https://hangang.seoul.go.kr/www/contents/662.do?mid=461